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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서 최선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


혼란 속에서 최선의 길을 여시는 하나님

(창 28:1-5)


성경에는 하나님이 연약한 사람들을 사용해서 뜻을 이루신 이야기가 많다.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이 그렇다. 엘리야와 이방 선지자들이 싸운 것도 그렇다. 1대 850의 싸움이었는데, 이방 선지자들은 왕실의 지지를 받았던 반면에 엘리야는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도 없었다. 기드온의 3백 용사와 미디안의 수만 병사들의 싸움도 그렇고, 에스더와 하만의 대결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에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인물들의 약점이나 비극이 무엇이었나? 다윗은 자격이 미달이었고, 엘리야는 외로움과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다. 기드온은 컴플렉스 덩어리였고, 에스더는 왕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서러움과 아픔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들의 악조건을 극복하도록 해주셨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모든 약점을 넘어서게 하셨다.


오늘은 혼란한 상황을 최선의 기회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야곱의 생애에 나타난 위기와 혼란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역사하시는가?


1. 하나님은 혼란 중에도 길을 내시는 분이시다.


본문은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이 무렵 에서와 야곱의 나이가 77세쯤 되었다. 그는 일흔 일곱 살의 나이에 타향으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에게는 외로움도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았는데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니, 거기에서 오는 박탈감과 혼란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이 말한다. 3절,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야곱이 비록 홀로 고향을 떠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4절에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작정하신 복의 길이 있다. 그 길을 가라는 것이다. 이삭이 야곱으로 하여금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복을 이어가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기도 하고,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길을 걷는다. 그러나 막상 그 걸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섭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정해 놓으셨다는 말이다. 야곱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야 하는 혼란한 상황, 형제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두려움의 상황에 빠져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이다. 길을 내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성도란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최선의 길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신앙이란 믿고 맡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최선의 길을 내시는 분인 것을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란 신앙의 반석을 날마다 굳세게 세우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혜를 얻고, 때마다 일마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쫓겨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무조건적으로 축복하신다. 외로움, 고독감, 두려움 등의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는 야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은혜로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는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못을 박으신다. 15절을 다시 보시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겠나?


실제로 하나님은 야곱과 늘 함께 하셨다. 이후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40년간 헤매고 다닐 때에도 함께 하셨다. 통일 왕국이 되었을 때도 함께 하셨고, 그들이 분열되었을 때나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도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이런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성도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성도이다.


야곱이 꿈에서 깨어보니까, 자기 인생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그것을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서 하는 말에서 드러내고 있다. 16절,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께서 이미 야곱의 생애에서 함께 하고 계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미 야곱과 함께 계셨는데,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미 야곱 옆에는 하나님이 함께 다니고 계시는데도 야곱이 곁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스’라는 이름 대신에 ‘벧엘’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벧엘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고 고백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성도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3.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창 28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신비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약속을 떠나버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잊어버리면서 사는데,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상처 덩어리를 안고 고향을 떠나가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되돌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상처를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이런 것이 은혜이다. 야곱이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은혜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지난 주에 살펴보았지만, 그는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20여년의 세월을 노예처럼 살았다. 그런데 그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회복을 약속하시고, 풍요를 약속하시고, 능력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가 야곱과 똑같은 존재이다. 구원받기 위해서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고,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다. 구원의 은혜도 주셨고, 인생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은혜도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란 의의 최종 승리를 믿어야 한다. 우리는 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믿어야 한다. 바울은 롬 8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다. 그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성도를 인도하신다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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