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하라, 목적을 따라 가라.(마 15:1-11)


오늘 본문은 기본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세레트 핫데바림, 즉 데칼로그’와 같이 기록된 율법이 있습니다. “statute”(성문법)이 있습니다. ‘written law’입니다. 그런데 그 법을 지키려고 수많은 “구전법”을 만들었습니다. 전통이나 도덕법과 같은 일종의 불문법입니다. “unwritten lan”입니다. 자기들이 구전으로 전해주는 법이 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도 그런 것입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런 전통들 중에서, 정결법을 확대한 것이 있습니다. 밖에서 부정한 것과 접촉해서 부정해졌을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외출에서 돌아오거나 식사하기 전에는 손을 씻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2절을 보면,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2절)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기본도 지키지 않는 것들이 그런 말을 하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그보다 훨씬 존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왜 지키지 않냐고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씀하신 것이 “부모 공경”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세레트 핫데바림”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주 다른 말씀이지 않습니까? “공경하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베드’는 ‘무겁다, 존귀하다, 중요하다’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가 “명령형”으로 표현되어 있으니까 “반드시 존경하라, 절대적으로 존귀하게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매우 중요하고 존귀하게 모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킨다는 핑계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께 ‘예물(고르반)’을 드리면 부모에게는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로들의 전통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것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8-9절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인가요? 이 백성이 입술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이는데, 마음을 보면 전혀 아닌 것입니다. 형식은 있는데,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경외하지 않습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사도들의 기본이 무엇이었습니까? 기도와 말씀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 사역이란 “복음전도”입니다. 그게 교회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구제와 봉사입니다. 기본에 충실할 때 목적을 따라갑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기본을 잃어버리면 방황하게 됩니다. 반면에 기본에 충실하면 좋은 열매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도 기본에 충실하면 됩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충만, 은혜충만, 말씀충만”을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간혹 저를 위해서 기도하실 때, “우리 목사님 성령과 은혜와 말씀이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기본이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려면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 성령이 주인되셔야 합니다.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아가 부인되지 않고서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자아를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은혜 충만은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할 때 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교만한데,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은혜가 충만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내게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구할 때, 은혜 충만이 임하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도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충만하려면 말씀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열심히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들었으면,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지 않는데 말씀으로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기본입니다.

기본에 충실할 때, 목적을 따라간다.


이렇게 기본에 충실해야 목적을 따라가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와 성도의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제가 지금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존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입니다. 복음전도해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 직분을 가진 목적, 신앙 공동체가 존재하는 목적들이 다 여기로 향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혼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직분, 여러분의 직업, 가정이 다 그런 일에 쓰임받아야 합니다. 이게 주님이 원하시는 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딤전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영혼 구원”이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일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요즘 제가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영혼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만 보게 하소서”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의 영혼이 산 영혼인지, 죽은 영혼인지만 보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그래서 죽은 영혼이면 어떻게든지 살리게 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요즘에는 새벽기도 끝나고 집으로 가면서, 전도지를 나눠주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정중하게 받고, 어떤 분들은 사양하기도 합니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내가 주님께 뭘 받으려고만 했지, 주님을 위해서 핍박당하고,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조롱당하기는 싫어했구나! 이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면서 “주님, 나를 용서해 주세요. 내가 이제 주님을 위해서 세상에 나가서 욕을 먹겠습니다. 조롱도 당하고, 매도 맞겠습니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다면, 그것을 기쁨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제가 100명을 전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제 아내도 하고, 부목사님들도 하라고 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들도 100명씩 전도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과 성도들은 50명씩 전도해 보십시요. 그러면 안 되겠습니까?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지만, 영혼을 살리겠다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믿음으로 “존재의 목적, 영혼구원의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믿음으로 교회도, 가정도, 삶도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