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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향력은 거룩함에서 나온다.


성도의 영향력은 거룩함에서 나온다.

(행 16:25-34)


성도란 건강하고 좋은 영향력을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사람들이 하루에 보통 13명의 사람과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내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일까? 건강한 영향일까, 부정적인 영향일까? 여러분이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건강한 믿음의 영향력을 주는 분들이 되시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할까? 그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겠다.


1. 언제나 믿음의 본질을 붙잡고 가야 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전도하러 갔을 때, 귀신들린 여자가 바울을 보더니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고 하면서 여러 날을 따라다닌다. 처음에 바울은 이 여자가 따라다니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바울의 마음이 괴로움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사로잡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 버린다.


여자가 사실을 말하고 다니는 것이 왜 바울에게 괴로움이 되었겠나? 사람에 주목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복음을 영접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자기들에게 집중하게 되니까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데, 자기가 드러나니까 마음이 괴로웠다.


이처럼 마귀는 교묘하게 복음 전도하는 일을 훼방한다. 복음 자체에 관심을 집중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게 한다. 복음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사람 때문에 실족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우리도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신앙생활하면서 늘 주님의 은혜, 복음의 진리, 생명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람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실족하게 되는 것이다.


본질을 잃어버리면 건강한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본질을 붙잡고 나가야 한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맞춰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에 인생의 목적을 맞춰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한다.


2. 둘째, 삶이 고단할수록 기도와 찬송에 집중해야 한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큰 지진이 일어났다.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렸다.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옥문이 다 열렸다는 것과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다는 말씀에 주목해 보라. 모든 죄수들이 갇혀 있던 옥문이 다 열렸고, 모든 죄수들의 발을 묶고 있던 사슬이 다 벗어졌다.


이게 무슨 뜻인가? 바울과 실라만이 아니라, 모든 죄수들에게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들 중에 누구라도 도망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있던 죄수들 중에 어느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만약 그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도망쳤다면, 간수는 문책을 당했든지 자살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죄수들은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감옥을 탈출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억울한 누명을 쓴 죄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흉악한 범죄자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범죄한 무리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도덕적인 양심을 가지고 선을 행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감옥을 탈출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게 만들었을까? 그 중심 인물이 바로 바울과 실라였다는 것이다.


죄수들은 바울과 실라에게서 무엇을 보았기 때문인가?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죄수들은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내용과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분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죄수들은 바울과 실라로부터 듣고 싶은 것이 있었고, 알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떠날 수가 없었다. 다른 편으로 보면, 바울과 실라가 죄수들은 설득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탈출하면 무고한 사람이 해를 당할 수 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면 안 된다.” 이렇게 죄수들의 탈옥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사실이든지 간에 바울과 실라가 그들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밤중에 기도하며 찬송하던 것이 죄수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을 것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찬송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반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는 영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한다. 환경과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거기에 빠져들어 가면 안 된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범사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3. 셋째, 선을 베푸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감옥문이 열리고 체인이 풀렸다. 그 문은 사람의 힘으로 열려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로 열려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고, 체인을 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허락하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탈옥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을 무안하게 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본문은 분명한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를 통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너희들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도 똑같이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힘이 모자라서 붙잡혀 있는 게 아니다. 너희와 똑같이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다. 우리는 다르다.”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살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나? 그것이 무엇이든 은혜요 선물이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다르게 보아준다. 다르게 대해준다.


간수는 자살하려고 했지만, 바울에 의해 죽음을 면하게 된다. 23절을 보면, 간수는 “든든히 지키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바울을 자기 집에 데려가서 씻기고, 치료해 주고, 음식을 주었다. 그들은 감옥에 있어야 하는 처지였지만, 감옥이 아니라 간수의 집에 머물렀다. 간수의 집에서 치료를 받았고, 제대로 된 음식도 대접을 받았다. 이런 게 성도의 영향력이다.


누구에게나 원수를 갚을 만한 권리가 있다. 누구에게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화를 내고, 불의한 일을 당하면 분노할 권리가 있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입히고 화나게 하면 다투고 싸울만한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하는 일이다.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하면 세상이 더러워진다. 잠 25:26절,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


원수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세상을 밝게 하는 일이다. 악에게 지지 않는 것이 영향력이다. 악한 길을 걸을 수 있고, 악한 사람에게 원수 갚을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를 위해 선을 베풀라는 것이다. 그게 영향력이다. 성도란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주님이 기뻐하실 일에 집중하고, 그런 마음이 신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죄악과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주님이 주신 은혜로 선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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