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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처럼 보여도 은혜는 계속 흘러간다.



실패처럼 보여도 은혜는 계속 흘러간다.(창 30:25-36)


야곱은 이제까지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살았다. 라반에게 속아서 10번이나 돈을 떼였다. 창세기 29장부터 계속해서 야곱은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반은 재물이 늘어났는데, 야곱은 재물이 없다. 30절,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반의 재산은 야곱으로 인해서 많아졌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을 위하는 마음이 거의 없다. 그는 여전히 야곱을 속이고, 그에게 재물을 남겨주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 긴박한 서로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자기의 것을 차지하려는 강한 욕심과 인간의 탐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야곱은 계속해서 노예처럼 살 것 같고, 라반은 조카의 등골까지 빼먹으려는 탐욕스런 인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 속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할까?


1. 실패가 끝이 되지 않게 하시는 은혜를 발견해야 한다.

지금까지 야곱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그냥 좋게만 볼 수가 없다. 그의 생애는 어떻게 보면 염려과 걱정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와서 사는데, 14년 동안 자기의 기업을 이루지 못했다. 외삼촌에서 속아서 노예처럼 사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막연하다. 야곱의 인생이 이전에는 남을 속이는 것이었다. 형을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제 외삼촌 라반의 집에 와서는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하면서 살아간다. 인생이 계속해서 실패하고, 계속해서 피해를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관점 중에 하나이다. 야곱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그의 인생이 실패 쪽으로 가고 있는가, 성공 쪽으로 가고 있는가? 오늘 읽은 내용으로 보면 야곱의 인생이 완전 실패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는데, 그것이 그렇지가 않다.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 야곱이 실패하고 속는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라반의 집에서 무려 14년 동안이나 야곱은 속임수에 빠지고, 노예처럼 일하고, 재물을 모으지 못했다. 그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은 실행되고 있었다. 하나님의 열심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인생에서 이루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다 이루어진다. 그는 네 명의 아내를 얻었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자식들을 낳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풍부한 재물까지도 이루게 하셨다.


2. 보는 것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는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달라지고 열매가 달라진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사람이 좋은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을 옆에 두고서 감사할 줄 몰랐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것에도 감사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주신 것에도 감사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가 얻은 것 때문에 불평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불평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편에 있는 것 때문에 오히려 불안하고 두려워했다. 그는 주신 것에 감사하지 못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에 오히려 문제 거리를 삼았다. 좋은 것을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창 30:37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가지를 벗겨서 양들이 물을 먹으러 올 때 보게 한다. 그러니까 양들이 그것을 보면서 교미를 하고, 그것 때문에 얼룩진 것들이 태어난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가 모두 껍질을 벗기면 속이 하얗다. 그러니까 껍질을 군데군데 벗기면, 껍질을 벗기지 않은 푸른색과 벗겨낸 흰색이 어우러져서 얼룩무늬가 된다. 그것을 보고서 얼룩무늬 양을 태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술로 보는 사람이 있고, 과학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율법으로 본다. 껍질이 벗겨진 나뭇가지가 율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껍질이 벗겨진 나뭇가지 앞에선 양들, 즉 율법 앞에선 양들이 야곱의 소유가 된다고 말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영락없는 알레고리적 해석이다. 야곱의 행위는 주술도, 과학도 아니고, 율법도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다. 야곱의 신앙이다.


야곱이 양들로 하여금 그런 가지를 보게 한 것은 약속을 보게 한 것이다. 창 31장에서, 야곱은 이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것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점 있는 것, 얼룩무늬 있는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그러니까 자기가 받은 약속을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양들에게 얼룩무늬를 보여주었다. 하나님이 약속한 표징을 보여준 것이다. 한 마디로 야곱은 양들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했던 것이다. 이게 놀라운 것이다. 야곱의 믿음이 완숙한 단계가 아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 보면 야곱은 자기 가문을 세우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고, 양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게 했다.


신앙이란 결국 무엇을 보느냐이다. 문제를 보느냐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느냐? 세속의 영광을 보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보느냐? 마귀의 유혹과 박해를 보느냐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보느냐? 이런 것이다. 야곱은 약속을 보았고, 자기 양 떼들에게도 약속을 보여주었다. 성도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과 꿈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고, 역사를 이루 어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한다.


3.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야곱의 생애가 목적을 향해서 나가는 과정으로 들어선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이전까지 여자를 위한 인생을 살았다. 여자를 얻으려고 라반의 집에서 일했고, 여자에게 만족을 주려고 했다. 그러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의 목적을 향하기 시작한다. 야곱은 창 30:30절에서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라고 했다. 이 말을 창 31장과의 연계성 없이 읽으면, 야곱이 자기 가문을 세우려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창 31장에서 이미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들은 뒤에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야곱이 세우려는 가문은 하나님의 목적과 맞아 들어가는 가문,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세우려는 가문인 것이다.


야곱은 자기 인생의 관점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방향으로 잡아가고 있다. 그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고, 그 분의 사랑과 약속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는 시험과 연단의 세월을 보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자기의 인생을 붙잡아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대로 사는 것이 훨씬 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에서와 만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나중에 얍복강에서 행했던 야곱의 행위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야곱은 자기의 재물을 모두 에서에게 갖다 바치려고 했다. 자기의 자식들과 아내들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의 생명까지 걸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있는 곳이 그래도 편한 곳이다. 그런데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야곱이라는 사람의 인생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야곱은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서 자기의 인생을 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실 것이다. 지금 현장에 있으면 먹고 살기 편하고 괜찮다. 그런데 어떤 목적을 향해서 모험이 필요한 곳으로 도전해야 했던 경험을 가진 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도전할 때,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가 위대한 삶을 살면서 끝나게 되어 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그렇다는 것이다. 왜인가? 예수님이 승리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도는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시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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