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올해 마지막 주일이 되었고, 주일 예배를 드리는 마지막 강단에 서게 되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에게 좋은 일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을 것이다. 계획과 소망대로 성취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몇년 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말했다. “인간의 가장 훌륭한 점은 우리가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올 한해 마이너스가 생긴 것이 있다면, 플러스로 바꾸어 나가시는 새해를 준비하시기 바란다.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고 했다. 성도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면서,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열린 마음과 뿌리내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니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1. 왜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일까?
우리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아세레트 핫데바림, 열 개의 말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제 1계명이라고 말하는 첫 번째 말씀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는 것이다. 여기서 “나 외에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알 파나이’인데, 단순하게 직역하면 ‘내 얼굴 가까이에, 내 얼굴 앞에, 내 얼굴 위에’라는 뜻이다. 그런데 ‘알 파나이’는 다양한 의미로 번역이 가능한 문구이다. 여기서 ‘파나이’는 ‘나의 얼굴’이라는 뜻인데, ‘얼굴, 임재, 앞면’ 등의 의미도 가진다.
‘알’은 전치사인데 가장 일반적인 의미가 ‘~위에’ 라는 뜻이지만, 히브리어 사전에는 16가지나 의미가 더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문구를 해석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이 문장을 ‘악명 높은 난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떻게 해석하든지, 이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다른 말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말씀을 듣는 ‘인간‘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아세레트 핫데바림의 첫 번째 말씀은 “너는 나의 면전에서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얼굴 앞에 다른 신들을 둔다면 어떻게 되겠나? 물론 그런 것들은 모두 피조물인 인간이 만든 우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 두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겠나? 하나님의 얼굴 앞에 다른 우상의 얼굴을 가져다 놓는다면, 우리의 시선은 초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향한 초점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질 수밖에 없다.
영적인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초점이다. 우리가 시선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 빼앗기게 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시선을 빼앗기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우리의 마음까지 빼앗기게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고 했다. 성도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 저기에 시선을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시선으로 초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인간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안드로포스’인데, ‘위를 바라보는 존재, 희망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나? ‘위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성도란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위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성도의 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은, 바울이 롬 2:7절에서 말한 것처럼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이다. 그런 사람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때때로 실망의 폭풍이 다가와서 삶에 고뇌와 갈등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때로는 크고 작은 바람이 마음을 심란하게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두움이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속에 머물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자기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면서 신뢰할 때 위로부터 능력이 임할 것이다.
성도란 믿음에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믿음에 생명력이 있으려면 온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고 바라보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난다. 구하면 구하게 된다고 하셨다. 찾으면 찾게 된다고 하셨다. 두드리면 열리게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여기서 “좋은 것”이란 말이 헬라어로 ‘아가다’인데, 이 말은 ‘좋은 것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좋은 것을 주시는데, 어떤 상황에 맞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뜻이다. 성도는 이런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하게 바라보면, 반드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이 믿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하시고, 이 믿음으로 새해를 설계하시기 바란다.
3. 적극적인 믿음으로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야 한다.
성도는 결국 믿음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끊임없이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티브 맥베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걸이 양탄자에도 디자이너가 의도적으로 넣은 어두운 색의 실이 있다.” 의도적으로 넣은 어두운 색, 그것을 통해 밝은 색이 더 찬란하게 빛을 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와 실수조차도 사용하셔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으로 만드실 수 있는 분이다. 스티브 맥베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의도적으로 넣은 어두운 색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여러분의 삶에 있는 어두운 색은, 여러분의 삶을 더 찬란하게 빛나도록 하는 도구임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그 정도 믿음이 있어야 진짜 성도이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이 동행하신다고 한다면 무엇이 인생의 승부를 갈라놓는 관건이 되겠나?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것이 진짜 진리이고 사실이라면 무엇이 문제이겠냐는 말씀이다. 바로 믿음이다. 믿음이 관건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있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면 두려움과 염려가 들어온다. 반면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태산같이 커 보이는 문제들이 있다. 그러나 언제라도 시선이 중요하다. 태산같은 문제를 보지 말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 믿음을 가지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태산같이 커 보이던 문제도 겨자씨 만큼 작아지게 되고, 겨자씨 같던 내 마음은 태산처럼 커지게 되어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믿으면 영광을 보는 것이다. 믿으면 크고 강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무엇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잘 풀려지지 않더라도, 슬프고 힘든 일이 괴롭히더라도, 믿으면 기적같은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믿음으로 좋은 것을 심으시기 바란다. 믿음으로 기도를 심고, 믿음으로 순종을 심고, 믿음으로 복음전도의 씨앗을 심고, 믿음으로 선을 심고, 믿음으로 인생을 심으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최고와 최선의 선물을 받으며 살아가는 믿음의 선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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