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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6_첫 번째 말씀,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 2(출 20:3-7)



하나님이 성도를 이끄실 때 사용하시는 독특한 방법은 “순종”에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씀하신다. “방향과 방법은 내가 안다. 그러니 너는 순종하고 발을 떼어라. 네가 보여야 할 것은 믿음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믿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라. 그러면 네 길을 인도할 것이다.” 그러니까 적극성의 근거는 머리가 아니라 믿음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다.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잡고 계신다.”는 믿음에서 영적인 적극성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성도는 어디에 가장 우선적인 적극성을 두어야 할까? 그것이 아세레트 핫데바림에 나오는 말씀에 다 있다. 우선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를 “적극적인 믿음으로 삶이 변화되는 교회”로 잡았다. 적극적인 믿음의 대상이란, 하나님 한 분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런 믿음, 여러분이 올 해 하나님만 바라보시면서 적극적인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열매를 맛보시기 바란다.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영적인 체험과 하나님이 채우시는 은혜의 체험을 누리시기 바란다.


1.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아세레트 핫데바림의 첫 번째 말씀인 “하나님 얼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진짜 우상은 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칼빈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마음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을 사로잡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스스로 자기들이 누리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칼빈이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 낸다. 자기 안에서 자기 욕망으로 ‘신들’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만들어 낸 욕망의 신들이 결국에는 인간을 집어삼켜 버린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3절)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 외에는 자유를 주실 자가 없다는 것을, 하나님 외에는 구원을 베푸실 자가 없다는 것을,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우리를 진정한 자유로 이끄실 분도 하나님 밖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하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만 보게 되면, 자유 이상의 것을 우리가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어느 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공부하면서, 아세레트 핫데바림을 받아서 내려온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장면을 이야기했다.


출 34:29절을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했다.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은 하나님과 말씀하면서, 그 분의 영광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하나님만 보면서 대화했다. 그러자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 모세는 자기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이에, 그런 일이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이다.


이렇게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는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게 된다. 성도가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살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 자기는 알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이 하나님과 닮아진 성품과 인격을 칭찬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백성은 하나님만을 보면서 하나님과 닮아지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인정하고 섬기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닮아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성도는 하나님과 닮아가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목적하신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누군가를 계속 바라보면 그와 닮게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닮아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닮아가면서, 하나님과 연합된 지체가 되라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섬겨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지체가 되라고 초대하시는 말씀이다.


3.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은혜가 부어진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사랑이 특별하게 쏘아져 나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을 애지중지하시면서 숨기시고 감싸시는 것일까? 습 3장을 보니까, 그것이 두 가지로 드러나고 있다. 하나가 습 3:12절 말씀이다.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그리고 다른 하나가 습 3:18절 말씀이다.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람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마음이 가난해지고 곤고해진 사람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사모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놀랍지 않으신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위대한 업적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상태, ‘심령이 가난해진 상태, 주님께 예배하기를 사모하는 상태’를 기뻐하신다는 것이 놀랍지 않으시냐는 말씀이다.


그러면 왜 이 상태를 기뻐하시는 것일까? 목마른 사람이 물을 더 찾듯이 심령이 가난해진 사람이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분이나 저도 그렇게 마음이 가난해진 상태에서 주님을 찾았던 경험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의 그 상태를 잘 간직하셔야 한다. 성도란 늘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서 가난하고 사모하는 갈급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얻어맞고 나서 갈급해 지는 것이 아니라, 부요해도 충만해도 늘 언제나 주님을 열망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부어지는 것이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에 가능하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눅 18:27절,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NIV 영어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What is impossible with men is possible with God.”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하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져와 보시라. 여러분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져야 보시라. 그 모든 불가능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주님께 가져와서, 주님 발 아래에 내려 놓아 보시라. 그리고 주님만 바라보시라. 그러면,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한 해를 승리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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