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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선물에도 목적이 있다.



일용할 양식, 선물에도 목적이 있다.(마 6:9-13)


주기도문의 전반부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주인이 되시라는 요청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굴복할 테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주인이 되시라는 기도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구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면, 이제 그 뜻 안에서 ‘양식’을 구해야 한다. 여기서 “오늘”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세메론’인데,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들 동안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기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양식을 구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구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무엇이겠나?


1.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기도를 가르치셨다. 누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왜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나? 공급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공급할 능력도, 공급할 마음도 없는 대상에게 구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오늘”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메론’이 ‘헤메라’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헬라어 ‘헤메라’에서 ‘에레모스’라는 단어가 파생되어 나온다. ‘에레모스’는 단순하게 말하면 ‘광야’라는 뜻인데, 구약에서 ‘미드바르’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들 동안에, 우리는 광야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미드바르’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미드바르,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아가는데 중요했던 양식이 어떻게 공급되었나?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다. 그러면 광야에서 사람들이 만나를 거둘 때 어떻게 했을까? 자기가 먹을 분량만큼 거둬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욕심이 있어서 더 가져가기도 하고, 다음 날을 염려해서 더 가져가기도 했다. 그런데 남긴 것은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벌레가 생겼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분량만큼 가져갔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간다고 자기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자기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분량만큼 먹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분량만큼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다.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겠나?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없는 것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주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 양식을 주시는 분이 주인되심을 알라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에서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우시온’에 대해서는 해석이 두 가지이다. 이 단어는 우선 ‘에피’라는 전치사에 ‘우시아’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시아’라는 단어를 ‘있다, 존재하다’는 뜻이 있는 ‘에이미’ 동사의 분사형으로 보기도, ‘오다’는 뜻있는 ‘이에나이’의 분사형으로 보기도 한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말 성경과 같은 맥락의 의미이다. 둘째의 경우에는 “내일을 위한” 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내일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 둘의 경우에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에피’라는 전치사가 가지는 뜻이다. ‘에피’라는 전치사는 “위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기 위해서, 오늘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든지, 내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든지, 일용할 양식은 “위에 존재하는 양식, 위에서 오는 양식”인 셈이다. 하늘 위에서 땅으로 내려온 양식이 무엇인가? 바로 “만나”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양식을 땅에 내려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살았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과 양식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늘의 양식을 땅의 백성들에게 주셨겠나? 하나님이 하늘의 것을 직접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머리가 되고 주인이 되려고 하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면서, 우리의 머리가 되려고 하신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두드리신다. 때로는 물을 먹이시고, 때로는 양식을 공급하시고, 때로는 말씀으로 그들을 두드리신다. 계 3:20절 말씀을 설명드린 적이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서 “두드린다”는 말이 헬라어로 ‘크로우오’ 인데, ‘두드리다, 치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어 ‘나카’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히브리어 ‘나카’라고 하면, ‘강하게 부수다, 깔아뭉개다, 쳐부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우리를 두드리시는데, 문을 부숴뜨릴 정도로 세게 때리신다는 말씀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우리의 ‘자아’라는 마음 문이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부서질 정도로 세게 두드리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문짝이 부서지고, 나의 집이 무너져내리는 기간’ 이기도 하다. 이것을 받아들지 못하면 힘이 들때마,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라고 생각한다. 내 집이 무너져 내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무너져 내릴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광야 40년이라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만나’를 주신다. 성경과 말씀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면,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먹으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3. 주시는 선물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가 무슨 뜻인가?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뜻이다. 출애굽 백성들이 만나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것을 거두어 먹을 때마다 그들은 “이것이 무엇이냐?”를 보았고, “이것이 무엇이지?”를 거두어서 먹었다. 그들은 양식을 먹을 때마다 “이것이 무엇이지? 이것이 무엇이지?”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조금 확대해서 해석해 보겠다. 출애굽 백성들이 날마다 만나를 먹는다. 그것의 의미가 “이것이 무엇이지?”이다. 그들은 양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이 무엇이지? 이게 무슨 뜻이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양식의 의미가 무엇이지? 먹고 무엇을 하라는 뜻이지? 오늘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지?” 이런 것을 생각했다.


성도가 이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선물을 주셨는데, 거기에는 의미와 목적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성도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서 그 분의 뜻과 경륜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그것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여러분이 받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 양식, 은혜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쓰여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물도 포기할 수 있겠나?” 우리는 오늘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도는 모든 말씀과 사건, 삶에 주어지는 은혜와 현상을 통해서 ‘이게 뭐지? 이게 무슨 뜻이지?’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해야 한다. 무슨 일이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든지,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을 읽어내는 자는 사는 것이고 읽어내지 못하면 죽는다. “일용한 양식”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용할 양식이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용한 양식을 달라는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해 진다. 이 기도는 “그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닫고 믿게 해달라”고 구하는 기도이다. 무엇이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든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닫고 믿게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삶,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시는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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