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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낙심의 자리에서 역전의 말씀을 듣다.(창 12:1-5)

  • 작성자 사진: 신애교회
    신애교회
  • 4일 전
  • 3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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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꽃예술 해설: 주님 바쁜일상속에서 흔들릴때마다 말씀으로 방향을 잡게하시고 해야할일을 지혜롭게 선택하는 힘을 주옵소서! 우리의삶이 어느자리에서든 선한영향력을 드러내며 믿음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강단에서 이야기해야 하지만 굉장히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이야기를 먼저 그 신앙의 길을 걸었던 선배들이 그 후배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고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신애교회도 언젠가는 해체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절박한 심정으로 새해부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서적은 아니지만 ‘스위치’라고 하는 책을 보면 ‘어떤 변화를 직감했을 때 바로 그 변화를 시도하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변하려는 바로 그 순간부터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물론 몸으로 행동하는 것도 동시에 필요하다는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첫 번째로 선택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 받았습니다. 아내 사래의 나이는 65세이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손을 가질 만한 희망이 사라질 만한 그런 나이였기에 어떤 절박한 심정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라”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창 10:21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에벨은 아브라함의 8대 조상입니다. 에벨은 아바르에서 나온 말인데 아바르는 ‘강을 건넌 자’ 라는 뜻입니다. 이 아바르에서 히브리라고 하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인간이 선택한 땅, 가장 살기 좋은 비옥한 땅 그 땅 즉 바벨을 버리고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땅을 향해 강을 건넌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애굽을 나와 광야로 들어간 사람들이며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자로 살겠다고 고백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의 문을 통과하고 난 후에 공생애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니까 강을 건넌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 제일 먼저 받는 게 세례입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내가 죽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물들어 가는 것이 세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내가 살던 세상적인 자아가 죽어버리고 그리스도께 물들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례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세례를 받습니다.


롬 4:11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롬 4:16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갈 3:6-7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왜 에벨과 데라를 믿음의 조상이라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인물을 믿음의 출발, 즉 믿음의 조상이라고 보는 것인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쉽게 말하면 아브라함이 믿음대로 사는 삶을 통해 강을 건넌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강을 건넌 사람답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믿음으로 끝까지 살아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을 만든 사람들은 강을 건넌 사람들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고, 사람들은 두려워서 세상으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창 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데라는 가나안 땅을 가려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지시를 붙잡고 약속의 땅을 향해서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란에서 지체했고 약속의 땅을 향해서 나아갔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못했습니다.


창 11:32 데라는 나이가 205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나가다가 그냥 멈추어 서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우리 교회가 어디까지 가기를 원하십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세 제자 중에 베드로가 말했던 것처럼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그저 초막 세개 지어서 여기서 우리 같이 지냅시다’ 비전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비전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그 목적지가 정말 나한테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증거가 되는 교회도, 500명이 모이는 교회도, 3천 명이 모이는 교회가 나한테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주어가 나한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좋다고 여기면 앞으로 못 나갑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창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민족과 주권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그냥 보통의 나라가 아니라 제사장 나라를 이루게 해주겠다라고 하는 약속인 겁니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서 제사장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하는 약속이 나가는 겁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나오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제사장 나라가 나오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대제사장이 나온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이고, 신약에서는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하는 것이 이 제사장 나라인 것입니다.   강을 건넜으면 강을 걷는 사람답게 서야 합니다. 목적지를 향해서 계속 가야 하고 그 목적지에 마침내 도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계속해서 걷고 또 걷고 이동하고 또 이동해야 합니다. 교회가 심겨졌다면 우리 교회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계속 가야 합니다. 계속 가야 합니다. 자기를 때리고 부서지게 해서라도 가야 합니다. 무너뜨리고 가야 하고  장막을 옮기려면 장막의 텐트를 뽑아 다시 짊어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심었던 것도 다시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라 


이 목적성을 향해서 계속 흘러가야 하며 안 되는 건 버리고 되는 걸 향해서 붙잡고 가되, 그것이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내 욕망을 붙잡으려 하는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됩니다. 눈물도 있어야 되고, 땀도 있어야 되고, 희생도 있어야 되고, 그냥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시대가 되지 않고, 여러 믿음의 조상들이 이 교회 하나를 세우기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을 통해서 이 땅에 생명감 넘치는 하나님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꼭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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