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0:1절을 보면, 시인은 환난 중에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를 쓴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그는 과거에 환난 중에 있었던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환난 중에” 있었다고 표현한다. ‘환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라”는 ‘괴로움, 고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때 괴로움, 고통 때문에 힘든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시인만 그랬을까? 살아가면서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통과하며, 환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환난이 없을 수가 없다. 문제는 성도가 환난을 만났을 때, 어떻게 다스리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광야의 길에도 문제는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임하셨던 광야였지만 거기에도 풀리지 않는 인생의 고민이 있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광야 길을 걸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이 그렇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여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문제와 싸워 이기며 사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와 직면했을 때, 내가 어떻게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편 120:1절의 표현처럼, ‘내가 환난 중에’ 있을 때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 같은 세상에 사셨다. 죄와 허물투성이 세상에서 우리와 똑같은 육체로 사셨다. 예수님이 사시던 때에도 질병으로 고통당하던 사람이 많았다. 가난에 시달리며 마음에 괴로움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 많았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염려와 근심으로 살았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도전에 직면해서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내가 환란 중에”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답은 여호와께 부르짖는 것이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바디매오가 고침받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는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때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다. 그가 어떻게 했는가? 마가복음 10:48절에 기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바로 이것이다. 그는 환난 중에 주님께 부르짖었다. 더욱 크게 주님께 소리를 지를 때, 그의 몸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예수님의 체온이 느껴지는 방향이었다. 그의 몸은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뜻이다.
시편 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이것이 정답이다. 모든 상황에 답은 하나님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인생을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고통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마땅히 하나님을 보아야 하고, 그분의 임재를 기대해야 한다. 그러면 응답하신다.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시편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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