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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 보인다고 방심하지 말라, 열매에서 드러난다.(마 13:24-30)


가라지가 아니라 의가 승리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가라지와 같은 “죄”가 세상을 오염시킵니다. 세상을 타락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좋은 열매가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세상이란 “천국의 아들들, 즉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사람들”로 넘치는 세상입니다. 자기의 세상에 그런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성경의 역사가 그런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씨앗을 가나안에 심으셨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야곱의 가정을 애굽에 심으셨습니다. 출애굽 백성을 광야에서 연단하신 뒤에, 다시 가나안이라는 세상에 심으셨습니다. 그렇게 씨앗 하나를 심어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고 도망갔습니다. 야곱의 가정에 가라지를 심고, 출애굽 백성들에게 가라지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전진하다가 막히고, 성령의 역사가 앞으로 가다가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낙심하거나 의심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 말씀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41절 이하를 보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풀무 불에 던져 넣는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고 했습니다. 성도는 의의 최종적인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자기의 영적인 삶을 항상 경주해야 합니다.

같아 보인다고 방심하지 말라.


오늘 설교 제목이 “같아 보인다고 방심하지 말라, 열매에서 다 드러난다”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그래야 합니다. 똑같아 보인다고, 비슷해 보인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결국은 열매에서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씨앗과 가라지는 “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가라지”에 해당하는 헬라어 ‘지자니온’은 밀과 비슷해 보이지만, 낟알에는 독소를 품고 있는 ‘독보리’를 말합니다.

핵심은 가라지가 밀과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닮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자라는 동안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밀과 독보리가 섞여 있는데,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심하면 안 됩니다. 내가 밀인지 독보리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떤 사람이 될 거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어릴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대답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의롭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할 때, “훌륭하다”는 것의 개념이 ‘성공과 출세, 부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현대인들이 대부분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에 관심하지, “어떤 종류(부류)”의 사람이 될 것인지에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되라는 말이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 자기 소원대로 성공한 사람입니까?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입니까?

엡 5장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란 “빛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즉 ‘밝은 빛의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엡 5: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엡 5:9절에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빛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달려가라.


여러분, 방심하지 마십시요. 좋은 씨앗이 다 좋은 열매를 맺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씨앗이 가라지에 사로잡히면 열매를 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좋은 열매를 내기 위해서 믿음으로 경주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고 했던 말을 기억하십시요.

멈추면 안 됩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잘 나가던 다윗이 타락한 순간이 있습니다. 삼하 11장을 보면, 다윗이 범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윗의 영적인 순례가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삼하 11:1절을 보면, 다윗이 부하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자기는 예루살렘 성에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이전까지 다윗은 전장에서 앞장 서서 싸우던 용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서인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삼하 11:2절에 보면, 다윗이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납니다. 저녁에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녁에 자고 아침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다윗이 저녁에 일어났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침에 잠이 들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아침에, 혹은 이른 새벽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깨어난 것입니다.

무엇을 엿볼 수 있습니까? 밤새도록 뭔가를 하다가 아침 무렵에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밤을 새도록 무엇을 했을까요? 밤을 새도록 놀다가 아침 무렵에 잠이 든 것입니다. 자기 부하들은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데, 다윗은 태만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하 11:2절에서 무엇이 보입니까? 밤새도록 놀다가 아침에 깨어서 보니까 “목욕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와가 유혹에 넘어갈 때처럼, 이생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일어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너무 잘 아실 것입니다. 다윗이 타락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사무엘서가 성도들에게 주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멈추면 안 됩니다. 기도와 말씀 생활을 멈추고, 예배생활을 멈추고, 봉사와 전도를 멈추면 안 됩니다. 성장하는 것을 멈추고 서서, “이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타락으로 갑니다.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이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멈추면 타락으로 갑니다.

빛의 열매를 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내고 있습니까?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는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 것입니까? 그렇다면 기뻐하면서 주님을 찬양하십시요. 하나님 나라에 해가 되는 열매가 나오고 있습니까? 그러면 겸비한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십시요. 내가 알곡을 맺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주님은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옮겨주신 분입니다. 사망도 이기게 하신 분이 열매를 바꾸지 못하겠습니까? 열매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겸비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빛의 열매를 내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달라구 구하십시요.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의 삶을 충분히 그렇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승리하고, 그 믿음으로 좋은 열매를 맺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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