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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마 16:1-12)


주님께 마음을 드리라.

하나님께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능력이란 “여러분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져와야 하는 것은 여러분의 작은 능력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주님께 기꺼이 나아가려는 마음, 주님께 기꺼이 드리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주님이 크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를 통해서 5,0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시는 능력, 칠병이어를 통해서 4,000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시는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아직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 능력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아직 바리새인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역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능력있는 자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은 마음을 찾으신다.


성경으로 돌아와서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찾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헬라어 ‘세메이온’은 눈에 보이는 “사인, 증거”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증거란 결국 “능력”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처럼 눈에 보이는 증거를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꾸 능력을 찾고, 표적을 찾습니다. 능력을 찾는 게 바리새인이고, 사두개인입니다. 그와 반면에 예수님은 한결같이 마음을 찾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만났을 때 했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 4:23)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하셨습니다. 돈을 많이 들고 와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출세와 성공을 가지고 와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학위를 들고, 자기의 권세를 들고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영과 진리”라고 했습니다.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마 22:37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제일 앞에 와 있습니다. 그 다음이 여러분의 목숨이고, 그 다음이 뜻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누룩을 경계하라.


그 누룩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2절을 보면, 누룩이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능력을 찾는 사람의 교훈, 표적을 찾는 사람의 교훈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들의 교훈을 “누룩”에 비유했습니까? 성경에서 누룩은 “악의 영향력, 죄의 영향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룩을 경계하고, 누룩을 내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무엇일까요? “형식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파라사이오스’란 헬라어는 ‘분리된 자들’이란 뜻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분리되기를 원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속적인 사람들과 분리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사람들과 분리되어서 철저하게 율법을 지킨다는 뜻으로 “분리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처음 의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꾸 형식으로만 남았습니다. 마음의 중심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서, 자기들의 형식을 자랑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누룩은 무엇일까요? 세속주의자, 인본주의자의 전형입니다. 그들은 귀족 출신이었고, 재산도 많았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수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를 믿지 않고,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고,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완전히 세속적인 사람들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는 그런 부류입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의 형식은 있는데, 진실이 결여된 사람이 있습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라고 하면서, 속사람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마지막 때를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떻습니까? 종말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칭찬할 수도 있고,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진실한 신자가 되십시요. 자기의 역할을 책임지는 일꾼이 되십시요. 무엇보다 영혼을 살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십시요. 필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이 아닙니다. 마음을 드리고, 진실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순종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본질을 붙잡고 가라.


예배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배드림”이 본질입니다. 받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고, 위로를 받고, 평강을 받고” 하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드림이 본질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드림”입니다. 하나님 앞에 보이러 나오라고 했습니다. “드리러 나오라”고 한 것입니다. “받으러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을 드리고, 자기를 드리는 것이 제사의 본질이고 예배의 본질입니다.

신약의 예배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예배한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죽으시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려고 부활하신 주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그 주님께 감사를 고백하고, 헌신을 다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많은 것을 받기 원합니다”가 아닙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살겠습니다. 그러니 나를 받아주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본질이 바뀌면,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됩니다. 사명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는 받는 기쁨으로 오는 곳이 아니라, 드리는 기쁨으로 오는 곳입니다. 봉사와 헌신의 기쁨, 영혼구원의 기쁨으로 오는 곳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자기를 드릴 때,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드릴 때, 약속된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통해서 은혜받기를 원하십니까? 위로받기를 원하십니까? 죄송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 성령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가 사명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기쁨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받는 기쁨은 교회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자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어디에서 응답을 받습니까? 세상에서 받습니다. 여러분이 사업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는 교회에서 합니다. 그런데 응답은 어디에서 받습니까? 세상에서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업이 잘 되고, 세상에서 자녀가 형통하게 되고, 세상에서 여러분이 위로와 능력을 받습니다.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삶의 현장(즉, 가정이라는 현장)에서 해결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 받은 은혜를 교회에 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위로받는 자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가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속회에서 선교회에서 성도들이 간증을 나누는 것입니다. 간증을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간증을 나누면서 사명에 대한 도전과 반응이 일어나고, 간증을 나누면서 영적인 교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으로 도전받아서 세상으로 나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본질과 우선순위가 바뀌면 교회가 힘을 잃어 버립니다. 여러분, 주님께 자기를 드리는 마음, 주님은 그것 하나를 보십니다. 그 마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말씀도 은혜고, 삶도 능력이 됩니다. 주님이 그렇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좋은 밭”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00백의 열매를 추수하는 좋은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우들, 여러분이 그런 성도, 복된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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