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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세대는 고통을 끌어안는 수용력이 다르다.(수 7:22-26)





승리하는 세대는 고통의 수용력이 다릅니다.

출애굽 세대와 가나안 세대의 차이 중에,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이 수용성입니다. 특히 고난에 대한 반 응, 고통에 대한 수용성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출애굽 세대는 “고통의 수용력, 고난의 수용 력”이 굉장히 낮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연단에 대한 수용력이 너무 없습니다. 그러니까 광야에서 연 단받고 훈련받는 것이 지겹고 짜증이 났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어야 하는 것인가? 왜 우리 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불평과 원망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 세대들은 고통에 대한 수용력이 강합니다. 이게 승리하는 세대의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승리하는 세대들은 고통에 대한 수용력이 강합니다. 고난의 목적과 섭리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 들입니다. 광야가 고통의 세월이지만, 그런 시련과 연단이 자기를 성숙하게 한다고 인정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을 믿으면서 삽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인내와 신앙으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리고 전투 패배의 원인은 아간 한 사람의 자기만족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가나안에 들어와서 처음 맞이한 시련이 두 번째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이스라 엘이 패배했기 때문입니다. 첫 전투에서는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리면서 압도적으로 승리했습니다. 그 런데 여리고보다 작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그 패배의 원인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입니 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여호수아 7장입니다. “아간”이란 인물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간”이란 이름은 ‘아카르’에서 나왔습니다. ‘곤란하다, 괴롭다’란 뜻입니다. ‘아카르’에서 나온 유명 한 단어가 “아코르(즉, 아골)”입니다. “아골 골짜기”라고 하면, ‘괴로움의 골짜기, 근심의 골짜기’란 뜻 입니다. 그 “아간”이 이름답게 이스라엘에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아간은 철없는 어린 아이가 아닙니 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의 일원이었습니다. 수 7:24절을 보면, 아간에게는 아들들과 딸들도 있었습니 다. 그는 완전한 성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신명기에 나 오는 모세의 유언을 들었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체험했고, 이스라엘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전했던 용사였습니다. 그런 그가 범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들과 가축들까지 곤란을 당하게 했습니다. 아간은 이름의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고, 자기 가족을 괴롭게 했고, 가축들까지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니 까 이제는 하나님이 아간을 괴롭게 하신다고 합니다. 2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 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시리라”고 했습니다. 아간이 이스라엘을 ‘아카 르’(즉, 괴롭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간을 ‘아카르’(즉,괴롭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일종의 언 어 유희가 나왔습니다. 아간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이유는 자기 만족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전투에서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불면서 나간다는 사실입니 다. 둘째는, 언약궤를 들고 여리고 성을 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을 도는 방식이 6일 동안 한 바뀌씩 돌고,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바뀌를 도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돌기를 마치고 나서, 함성을 지르니까 성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습니다. 이 과정을 묵상하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나 안을 정복하는 의미가 다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희년법의 핵심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희년 제도를 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농사를 짓는데, 7년째가 되면 땅을 쉬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안식년”이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땅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7년마다 안식년이 됩니다. 이렇게 안식년을 일곱 번 보내면 49년입니다. 그렇게 안식을 일곱 번 보낸 49년 다음 해인 50년째를 “희년”으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50년째가 되는 희년이 되면, 이 땅의 모든 것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서 자기 땅 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어도 희년이 되면 다시 돌아옵니다. 노예가 되었어도 희년이 되면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희년의 정신이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땅을 너에게 돌려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모든 땅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본래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간이 그것을 어겼습니다. 수 7:1절에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 7: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 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했다”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희년법”에 따라서 온전히 바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모두 바쳐야 하는 것인데, 아간이 훔쳤다는 것입니다. 아간이 무엇을 했습니까? 아간이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덩이 하나”를 훔쳤습니다. 이 한 사람의 범죄가 얼마나 중대범죄이기에 이스라엘 전체가 패배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까? 아 간의 범죄는 “희년법”을 어긴 중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범죄였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세대는 고통과 시련을 기도를 통해 알려고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감정을 소모한 것이 아닙니다. 느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유를 말씀하시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까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갑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와서 세 번째로 돌을 쌓았습니다. 처음에 요단을 건널 때 제사장들이 섰던 자리에 세웠고, 두 번째는 가나안에 들어와서 길갈에 진을 치면서 세웠습니다. 두 번의 돌탑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약속 의 땅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에 대한 상징이고 교훈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돌무더기는 다릅니다. “죄에 대한 교훈, 시련에 대한 교훈”입니다. 가나안 세대에도 시련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죄로 인한 시련”이었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그 시련이란 한 사람의 “자아 에 대한 추구”로 인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까? 그 죄와 시련의 싹이었던 “자아”를 묻었다는 것입니다. 자아를 묻고, 죄를 묻고, 정욕을 묻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스라엘에 게도 “괴로움”이었습니다. 오늘까지도 “아골 골짜기”라고 불려질 정도로 고통이었습니다. 그래도 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시련의 원인, 고통의 이유를 깨닫고, “묻어 버리느냐, 계속해서 붙잡고 가느냐”는 것입니다. 가나안 세대는 시련과 고통의 원인이 되는 “자아의 죄”를 묻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승리하는 세대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 실패의 이유를 붙잡고, 원망과 불평 속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탓을 하고 환경 탓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감정을 소모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가나안 세대는 실패의 이유, 패배의 이유를 붙잡고 씨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불태우고 묻어 버렸습니다.



시련과 고통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시련에는 반드시 거룩한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괴롭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유 없이 인생을 힘들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시련과 환난의 이유가 여러분의 죄와 허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그와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여러분에게 죄가 있어서 그런 것이냐 혹은 아니냐는 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환난과 시련에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 시련,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라고 물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것이 지혜입니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이렇게 안 되는 것입니까?”라고 묻지 마십시요.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환난의 용광로에 넣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 환난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신 것도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시련의 광야는 저주와 심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 는 기회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축복의 기회인 것입니다. 지금 막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마음의 성도가 있습니까? 그러면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소망을 가지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더 겸비해지고, 낮아지고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사랑과 은혜로 여러분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정금보다 아름답게 빛나도록 연단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와 교훈을 기억하면서, 환난 중에라도 기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고, 말씀과 약속을 믿음으로 성취하는 승리하는 세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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