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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기본을 갖추라, 그러면 무너지지 않는다.(마 21:12-17)


본질을 잃어버리지 말라.


본문에서, 성전이 본질을 잃어버리니까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14절을 보면,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아픈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고통의 사람들이 성전에서 치유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전에서 오히려 예수님께로 나옵니다. 이 사람들이 성전에서 구원과 멀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잃어버린 교회는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구하면 구원과 멀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셔야 하는데,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으면 구원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가 주인인 것을 주장하면, 그게 타락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그런 것입니다. 청지기 의식의 포기입니다. 자기가 주인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 뒤에 곧바로 무화과 나무가 마르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말라버립니다. 이 무화가 나무는 유대교를 상징하는 메타포입니다.

왜 유대교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 11:20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겨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도대체 무화과 나무가 어째서 마른 것입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마 11:21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린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믿지 않고 의심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시지 않습니다. 자기 뜻과 방법대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내용인 막 11:22절에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열매없는 이유, 아무런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자기 힘”과 “자기 생각”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집,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주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지체이다.


자기가 주인되는 순간, 신앙은 엉망이 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변함없이 일관된 메시지는 “주인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뀌면 안 됩니다. 인생도 가정도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청지기입니다. 교회도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골 1:18절에서, 예수님에 대해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엡 1:22절에서는,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엡 5:30절에서,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12:27절에서도,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머리는 예수님이고, 우리는 지체입니다. 주인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내가 무슨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인 의식”을 가지는 곳이 아니라, “청지기 의식”을 가지는 곳입니다. “주인 의식”이 아니라 “소속 의식, 즉 소속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게 뒤바뀌면 신앙이 병에 걸립니다. 엉망이 됩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제자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자기의 계획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의 목적 대해서는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C.S. 루이스는 “당신 안에서 죽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나를 부인하고, 즉 나의 자아를 죽이고,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할 때 신앙이 바로 섭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우리가 교회다]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관한 한, ‘내 길’(즉, 내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가운데 하나는 교회와 연결되어 있지만 예수님과는 단절된 사람을 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싱


클레어 퍼거슨은, “분명히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논리를 전개합니다. “일을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 많은 일을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 많은 능력있는 일을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 많은 능력있는 일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주’라고 불러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압도적인 기본, 거룩을 유지하라.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46년이 된 헤롯 성전에서, 예수님은 너무 실망하셨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주인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들의 뜻대로 신앙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립 46주년을 보내고 있는데, 주님이 우리 교회를 보면서는 어떠실 것 같습니까? 오늘 말씀의 제목이 “압도적인 기본을 갖추라”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앞도적인 기본은 결구 “거룩”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보실 때 반드시 칭찬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구별될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딤전 4:5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압도적인 기본, 압도적인 거룩은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이것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은 “구별되지 않아서”입니다. 교회가 너무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교회가 너무 세상과 닮아서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지 못해서입니다. 압도적으로 여러분이 세상과 구별되어 보십시요. 여러분이 세상에서 압도적으로 말씀과 기도에 생명을 걸어보십시요. 그러면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한다고 해도, 여러분을 우습게 여기지는 못합니다.

말씀에 생명을 걸고,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기도’에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교회가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자체로 복되고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다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께 칭찬과 영광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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