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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면 정말 역사가 일어난다.



내려놓으면 정말 역사가 일어난다.(창 32:3-12)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신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말이 있다. 쌀 알갱이로는 떡을 만들수 없는데, 부서져서 가루로 만들면 떡이 된다. 밀도 가루로 곱게 부서지고 갈아져야 빵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자아가 강한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 중에는 소제가 나오는데, 하나님께 곡식을 드리는 제사이다. 그런데 소제를 드리기 전에 제일 먼저 지켜야 할 조건이 곡식을 곱게 빻는 일이다. 소제는 고운 가루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쓰시는 사람들은 자아가 깨어져서 곱게 빻아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쪼개지고 깨뜨려지고 부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쓰임받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자아를 부수는 것일까? 왜 하나님은 사용하시려는 사람들마다 고통스러운 연단의 과정을 지내게 하실까? 오늘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1. 자아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중요하다.


왜 하나님은 쓰임받기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고통을 당하게 하실까? 왜 인생이 고단하고 힘이 든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살게 하실까? 왜 때로는 인생이 완전히 꼬여버린 것처럼 보이는 비참한 상황까지 몰고 가시는 것일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의지하면서 자신이 행복해지려 하고,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고 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런 본성이 깨져 나가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인간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야곱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망각하고 살아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받았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다. 이것은 야곱의 신앙과 직결되어 나타난다. 그는 무수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에서와 만하기 전까지 하나님께 온전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다. 야곱이 하나님을 부를 때면, 항상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오늘 9절 말씀에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자기의 하나님, 자기가 고백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자기 신앙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신앙이고 아버지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도 믿음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삶이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만 기도하는 습관이 있다. 일상적인 기도의 생활이 아니라, 문제 대응용 기도 생활이다. 7-8절,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야곱은 기도를 먼저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행동을 먼저하고 기도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행동이 막히고 문제가 발생하면 기도한다. 야곱은 에서를 향해서 행동하기 전에 미리 기도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적인 삶에서 매우 중요한 오류이다.


야곱은 하나님께 묻고 행동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게 하시고, 그 결정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는 자기의 생각과 방법대로 행동하고 난 뒤에, 그 행동에 걸맞는 열매를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한 것이다. 하나님의 결정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결정대로 하나님을 따라오게 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이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자기의 뜻대로 결정해 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자기의 자아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자기의 자아가 원하는 대로 기도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니까 하나님이 따라오시라는 식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까 성도란 자기의 이성과 행동이 삶의 출발이 아니라 기도가 삶의 출발이 될 때, 참된 복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도가 삶의 출발이 될 때,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차원에서 응답이 오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응답이 오든지, 거기에 분명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가장 중요한 씨름이 하나님과의 씨름이다.


야곱의 생애를 보면, 그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기적 만남이 두 번 있다. 하나는 라반과의 만남이고, 다른 하나는 얍복 강에서 이루어지는 에서와의 만남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만남 사이에 반드시 끼어드는 만남이 있다. 라반을 만나러 갈 때,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먼저 만났다. 그 다음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에서 에서를 만나는데, 그 만남 사이에 하나님이 끼어 있으시다. 라반과의 만남 앞에 하나님이 끼어들어 오시고, 에서와의 만남 앞에서도 하나님이 끼어들어 오신다.


왜 성경은 인간과 만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만나는 사건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모든 만남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어야 인간과의 만남, 사업과의 만남, 또 다른 인생의 복잡한 만남의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뜻이다.


사람과 씨름하며 사는 인생은 결국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인생이다. 그런데 사람과의 씨름은 이겨도 져도 결국 피곤한 인생이 된다. 부부싸움이나 가족들 간의 불화가 이와 똑같다. 이겨도 져도 피곤한 인생인 것이다. 야곱이 그것을 깨달았다. 그때 야곱을 통해서 드러난 깨달음의 표현이 무엇이었나? 바로 하나님과의 씨름이라는 새로운 선택이다. 이제는 사람과 씨름하는 덧없는 인생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겨도 져도 부질없는 사람과의 씨름을 그만 두겠다는 결단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과 씨름하던 야곱의 인생이 하나님과 씨름하는 인생이 되었을 때 문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위기가 축복이 되었다. 불화가 화목이 되었다.” 여러분의 인생은 누구와 씨름하며 살아가는 인생인가? 사람과 씨름하고 문제 자체를 붙잡고 씨름하는 인생인가?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런 문제들 이전에 하나님과 씨름하는 인생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과 씨름할 때, 문제가 보이지 않고 소망이 보인다. 환난이 보이지 않고 인내의 영광이 보인다. 성도란 “자기를 괴롭히는 문제를 보지 않고, 믿음 안에서 자라고 있는 소망을 보아야 한다. 환난과 고통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난을 통해서 나타난 새로운 생명의 역사를 보아야 한다.”


성도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바꾸면,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소망을 보게 하신다. 비전과 꿈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대한 소망을 꿈꾸게 하시고, 이루게 하신다.


3.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천사가 야곱을 도저히 이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은 육체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야곱의 자아를 꺾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마음이 단단해서 그렇다. 그래서 천사는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부러뜨린다. 야곱의 육체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곳이 “환도뼈, 허벅지 관절”이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에 목축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자유롭게 들로 산으로 양떼를 몰고 다녔던 사람이 야곱이다. 그 때 야곱은 자기의 다리를, 자기의 건강을 자랑했다. 지금도 환도뼈를 의지해서 천사와 씨름하고 있다.


그러니까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부러뜨려 버린 것이다. 이것은 “네가 자랑하는 힘을 빼라!”는 요구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빼라, 그리고 하나님만 신뢰하고 의지하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결국 야곱은 매달려 우는 것 외에 남은 방법이 없게 된다. 그는 자기 힘으로 도무지 이 어려움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호세아서는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주석하고 있다. 호 12:4절,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에서 야곱은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절대적인 인생의 위기 앞에서 그는 천사의 다리를 잡고 “울면서 그에게 간구”했다. 요구가 아니라 간구였다. 이제 씨름하여 자신이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펑펑 울면서 간절히 청하였던 것이다. 그가 울면서 간구했던 내용이 26절에 기록되고 있다.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야곱을 인정하신다. 자아를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신뢰를 넘긴 야곱을 인정해 주신 것이다.


여러분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를까? 여러분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빠를까? 전적인 포기가 가장 빠른 방법이다. 무엇보다 기도를 앞세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교훈을 전해 주었다. 호 12:6절에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며, 오늘날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도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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