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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살면 실패한다, 섭리대로 살 때 승리한다.(출 16:1-12)


생존의 문제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1절을 보면,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첫째달 십오일, 즉 1월 15일에 나왔습니다. 출 16장에서는 둘째 달 십오일, 즉 2월 15일이라고 했으니 한달이 지난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로 한달이 지났을 때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3절을 보면, 애굽에 있을 때는 “떡을 배불리 먹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레헴’은 ‘먹을 양식’이란 뜻이니까, 먹을 양식이 풍족했다는 뜻입니다. 노예로 살았지만, 먹고 사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자기들이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예로 살았고,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과거를 보면, 시련과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입니다.

출애굽 직전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 정도로 자유에 목말랐던 사람들입니다. 박해와 구속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보다 생존입니다. 먹을 양식이 없어서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이게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당연한 일을 가지고도 원망하는 말은 싫어하십니다. 그러니까 원망하는 말을 그치게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연약해서, 자꾸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내하면서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에서 엄청난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마라에서 쓴 물이 단 물로 치료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기도가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도보다 원망과 불평이 먼저 나가는 것이 이스라엘의 습관입니다. 이 습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원망이나 불평은 제일 쉬운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기도를 앞세워야 합니다.

생각이 아니라, 섭리에 따르라.


오늘 설교 제목이 “생각대로 살면 실패한다, 섭리대로 살 때 승리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너무 자랑하지도 말고, 너무 앞세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게 말씀에서 벗어난다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을 때, 자기 생각대로 나간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만나를 많이 가져와서 다음 날까지 먹으려던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안식일에도 만나를 가지러 나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대로 하는 사람들이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니까 섭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섭리대로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에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러분이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거를 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으로 바꾸십시요. 찬송가 563장에서 고백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연약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강하시다는 것입니다. 권세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믿고, 주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려는 본성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십시요. 말씀이 여러분의 태도가 되게 하십시요.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니까, 그 분을 인생의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설교할 때, 본문을 묵상하면서 엄청 울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여러분을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절을 보면서, 과거에 나누었던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요. 4절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양식을 내린다고 했습니까? “너희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해서 친히 일하신다는 것입니다.이게 매일같이 내리는 양식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표현이 “일용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히브리어로는 ‘떼바르 욤’이라고 했습니다. 직역하면, ‘하루의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동안에 먹을 분량의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매일 일하시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리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일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매일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매일의 양식, 매일의 은혜


그렇게 매일 “하루의 양식”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매일 똑같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데,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았습니다. 이게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마다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셨습니다. 40년 동안, 정확하게 말하면 39년 11개월 동안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툭하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자기 인생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하나님은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만나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패역한 말을 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그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시내산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됩니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서 40일을 금식하면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우상에게 절하고 예배하면서, “이것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출 32:8)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실망해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출 32:9)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모세에게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10)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이 실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도 아침이 되면, 하나님은 똑같이 사람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말씀을 묵상하다가,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4절)는 말씀의 은혜를 깨닫고 펑펑 울었던 때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용할 것(즉, 떼바르 욤)”은 사람들의 상태와 관계없이 날마다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배신에도 불구하고, 거짓과 불의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광야와 같은 인생에서 붙잡고 의지해야 하는 분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 재물의 문제, 건강의 문제에 붙잡혀서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붙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는 진리에 붙잡혀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존의 문제, 환경의 문제에 붙잡히면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부정적인 삶으로 흘러갑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하시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말씀에 눈을 뜨라.


그걸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말씀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붙잡는 신앙입니다. 9절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더 크게 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더 향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말씀을 마음으로 뜨겁게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말씀에 딱 붙잡혔습니다. 마음이 말씀에 붙잡히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요.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마음이 말씀에 딱 붙잡힌 다음을 잘 보십시요.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았습니다. 광야를 보았더니 메마른 땅이 보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를 보았더니 죽은 나무들이 보였다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를 보았더니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죽음의 땅을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를 보았더니 “영광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구름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에 붙잡히니까 하나님 임재의 영광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보고 나니까, 인생의 문제가 그냥 풀려나갑니다.

‘그렇구나! 우리를 이끌고 온 저 구름 기둥이 무엇을 상징하던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들은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여기까지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광야같은 인생에서 자기들만 있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자기 노력과 열심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광야를 바라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임마누엘로 항상 함께 하시면서, 그늘이 되고 바람이 되었던 구름 기둥 속에 나타난 영광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에 붙잡혔을 때, 임재가 보이고, 영광이 보이고, 문제가 풀려 나갔습니다. 여러분도 말씀에 딱 붙잡혀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영광을 체험하고, 기도의 제목들이 열려지고 풀려지는 은혜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감사와 찬송의 고백 속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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