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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일어나 앉는지라.(행 9:36-43)

  • 작성자 사진: 신애교회
    신애교회
  • 5일 전
  • 4분 분량

사랑의 주님!!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로 지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의 웃음은                                          주께서 창조하신 기쁨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 거친 바람 속에서도  주님안에서 살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오늘은 특별히 어린이 주일로 지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의 웃음은 주께서 창조하신 기쁨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세상 거친 바람 속에서도 주님안에서 살게 하소서!!!

초대교회의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위로하심이 그들과 함께하셨다라고 하는 게 성경의 증거입니다.

(행9: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고 발전했으며 성령의 위로로 성도들의 믿음이 정진되었고 교회가 발전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다른 형제들의 일을 너무 캐고 다니지 마세요.” 내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다른 형제들의 일을 너무 캐고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토저 목사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원한다면 당신의 그리스도인 형제를 너무 자세히 살피지 말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의 흠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피지 말라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에서의 자세히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해 마귀가 사용하는 것이 바로 성도들의 불완전함입니다. 그 불완전함과 연약함을 봤을 때 마음을 잘 다스려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행복의 요건이 뭐냐 환경이 아닙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다스리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돈도, 건강도 하나님이 내게 쓰라고 하신 거 잘 다스려야 됩니다. 직장생활도, 신앙생활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허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잘 다스려야지 그 사람이 복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완전하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야 할 것은 내가 불완전한 것만큼 저 사람도 불완전하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할 때 거기에 걸려 넘어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때문에 실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해 나가는 성도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성과 완전하심에 대해서는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이시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완전하신 분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약1:17절)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이 예배당에 앉아서 같이 예배하고 있는데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심지어 목사님을 포함한 장로님까지도 다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니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제 태양을 발광체라고 말하고 달을 반사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태양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고 달은 그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존재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에게 하나님 빛 대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나와 함께하신다고 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찬란한 빛이 여러분의 인생을 반드시 밝고 빛나게 하신다는 것을 꼭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이 들어와서 생명의 빛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가 살아났고 산 자가 가는 영원한 천국의 생명으로 우리를 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그냥 두시지 않고 성령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성령으로 살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이라는 건 여러분이 구하는 모든 것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해가 되지 않는 모든 것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즉 다르게 말하면 여러분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거, 여러분에게 유익한 거, 그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주실 줄 아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고 하는 여 제자가 겪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에 열심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들어서 죽었고 사람들이 그 시체를 씻어서 다락에 두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욥바에 룻다라고 하는 곳에 베드로가 있는데 급히 사람을 보내어 빨리 여기로 와달라고 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욥바에 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기도하더니 시체를 향해서 말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사람들은 베드로를 통해서 장례를 치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죽은 자를 생명으로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그 죽음을 그냥 끌어안을 뿐입니다. 누가복음 22장 말씀을 보면 거기에 최후 만찬의 스토리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며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눅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까부르릇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내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시몬이라고 부르는 의도성이 있는데, 베드로는 페트라 즉, 반석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흔들리는 갈대라는 뜻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자신의 생각대로 장례를 치르려는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장례를 치르지 말고 그 죽은 자를 향하여서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르려 했던 마음을 접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다비다를 향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비다야 일어나라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과 절망 가운데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분의 존재가 들어오니까 생명과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후에 공동체에 말씀이 들어와서 생명이 되자 온 동네 사람들이 믿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같은 절망이 있더라도 거기에 말씀이 임하면 생명이 되고 소망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들어가니까 생명이 됐는데 그 생명을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가 세워지기를 원하시냐면 반석 같은 믿음이 세워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행복론은 비움이 아니라 채움입니다. 나를 부인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집니다. 성도가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집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채워집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채워집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셨던 모든 일이 내 안에 채워집니다. 성령과 말씀이 채워집니다. 축복과 은혜가 채워집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인도하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통과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여러분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성도 되는 것이 정말 복된 것인 줄을 영적으로 깨닫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고통과 수치를 누구보다 더 치명적으로 당하신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예수님이 수치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영생하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수치와 고통,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거를 보면서 그거를 의식하면서 믿음으로 끝까지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빛난 면류관을 받기까지 주의 십자가를 붙들고 죽었던 다비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말씀, 성령의 위로하시는 말씀이 들어갔더니 죽음이 생명이 되었습니다. 슬픔이 믿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위로하시는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붙잡으면 여러분도 죽음에서 일어나고 가난에서 일어나고 절망에서 일어나고 질병에서 일어나고 슬픔과 낙심에서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어라이즈 그 말씀이 들어왔을 때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난 것처럼 난 여러분에게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날마다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생명을 거시기 바랍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음성 속에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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