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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하나를 제대로 세웠더니!



믿음 하나를 제대로 세웠더니!(창 22:1-14)


1절은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시험’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닛사’이다. 이 ‘닛사’라는 단어는 ‘증명하다, 검증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기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해 보이면, 한 단계 믿음이 더 올라가게 되고, 반대로 증명해 내지 못하면 믿음이 후퇴하게 된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시험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는 시험을 어떻게 다스려나가야 할까?


1. 걸려 넘어지지 말아야 할 시험이 있다.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은 성도들을 시험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약 1:13절,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페이라조’에 해당하는 말인데, 이 단어는 ‘유혹하는 시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시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페이라조’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유혹하는 시험을 주는 것은 ‘사탄, 마귀’이다.


사탄은 믿지 않는 사람을 혼미하게 해서, 예수님을 더욱 믿지 못하게 한다. 고후 4:4절,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사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이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한편 신자들을 유혹해서는 믿음이 꺾이게 만든다. 누구나 성령 충만을 경험하면 곧바로 시험을 만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은혜 받은 뒤에 마귀가 역사하는 것이다. 부흥회에서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면, 돌아가는 길에 시험에 빠질 때가 있다. 수련회나 새벽집회에서 은혜 받고 나면, 은혜를 쏟아 부을 만한 사건이 일어난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시험을 받으셨다. 눅 4: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해지셨다. 그러나 곧바로 광야에서 시험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해지면 시험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면, 거기에 따라오는 시험이 있다. 유혹이 있고 박해가 있고 환난이나 곤고함이 따라서 온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2. 증명해 보여야 하는 시험이 있다.


넘어뜨리려는 페이라조와 다르게 ‘도키마조’라고 하면, 확증하기 위한 시험을 뜻한다. 이것이 창 22:1절에서 나타난 ‘시험’(닛사)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시험, 즉 ‘페이라조’를 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믿음을 확증하게 하시려는 시험, 즉 ‘도키마조’를 치르게 하실 때가 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증해 보기 위한 일종의 시험이었는데, 이것이 도키마조이다. 그런데 히 11장에 보면, 오늘 본문에서 보여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 11:17,19)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여도, 다시 부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는 말이다.


바울은 고후 13:5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버림 받은 자”라고 했다. 이 말을 영어 성경(NIV)은 “You fail the test.”로 번역했다. 헬라어로 ‘아도키모이’라는 이 말은 ‘시험에 떨어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시험에 실패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성도는 언제라도 믿음의 시험에 직면하게 된다. 환난과 역경이라는 시험, 유혹과 핍박이라는 시험에 직면하게 된다. 때로는 건강으로, 때로는 재물로, 때로는 가족관계나 이웃과의 관계로 시험을 받게 된다. 그렇게 시험당할 때, 우리 안에 누가 계신지를 알아야 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바울의 말처럼,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아닌지는 그 때 결정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우리는 시험에 성공하는 사람이 된다. 반면에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알지 못하면, 경험하지 못하면 시험에 실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시험을 통과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 진다.


믿음이 진짜 믿음인지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 보아야 안다. 겉으로는 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냐는 것은 검증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개념이 번제이다. 왜 하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번제를 요구하셨을까? 번제란 히브리어로 ‘올라’ 라는 말인데, 제물의 각을 떠서 모두 불태워 올리는 제사이다. 가죽과 배설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태워서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이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의 말씀은, 아들이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죽이라는 말씀이다. “아들 이삭은 너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말씀을 인정하라는 뜻이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것이면 죽은 자이고, 하나님의 것이면 산 자가 된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나? 우리 생명이 진짜 생명이 되려면 내 손에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손에 드려야 한다. 내 손에 있으면 번제, 곧 죽어져야 하는 생명이다. 내가 가진 생명은 다 죽어진다. 그러니까 내 손에서 생명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에 맡겨 드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받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내 생명을 살려서 영원한 생명으로 되돌려 주신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맡겼는가? 아브라함은 모리야산 번제단 위에 이삭을 올려놓았다.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그렇게 믿음 하나를 제대로 세우고, 아들의 생명을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그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번제단 위에 생명을 올려놓았는데, 여러분은 예수님에게 생명을 맡기셨나? 아니면 여전히 내 생명이라고 내 손에 쥐고, 내가 주장하고, 내가 계획하고 집착하면서 살고 있으신가?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시험하신다. 아브라함처럼 그 시험에 통과하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셔야 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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