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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기뻐하더라. (요 20:19-23)

  • 작성자 사진: 신애교회
    신애교회
  • 4월 23일
  • 4분 분량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의 돌문을 여시고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신 예수 !!                               복된 날, 저희는 살아 계신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의 돌문을 여시고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신 예수 !! 복된 날, 저희는 살아 계신 주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당하신 고통의 흔적 죽음의 흔적을 보면 마음 아파야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서 오히려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것을 보고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화되었다는 말씀인것입니다. 이게 이제 부활 신앙인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제자들의 상태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제자들의 경우에는 폐쇄적인 행동을 했었냐면 두려움이라는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그들에게 오셨을 때 두려움이 평강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시 어떤 부정적인 감정에 붙잡힌 분이 계시다면 부활의 주님이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과 만나 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이 평강과 기쁨으로 변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기뻐했다라고 했는데 중요한 이유는 요한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요한이 옆구리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손과 발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옆구리를 강조합니다. 


(요:19:34)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이 전하려고 했던 상징 비유가 뭐냐? 출애굽 백성들이 겪었던 것을 우리 예수님이 구원하신 사람들이 다 동일하게 겪는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피와 물이라고 하는 두 가지 상징은 출애굽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두가지 피와 물사건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애굽의 열 번의 재앙이 나가는데 그 10번의 재앙 즉 9번의 재앙까지도 바로의 마음이 완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열 번째 재앙으로 하나님이 죽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애굽 전역에 덮칠텐데 그 집 안에서 초태생은 다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서 사망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양을 잡아서 양피를 집에 문설주와 좌우 문인방에 갖다 바르고 문의 사면에 양의 피를 바르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자기 집 문에다가 양의 피를 발랐더니 진짜 죽음의 그림자가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 사람이 다 죽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어린 양의 피로써 생명을 구원받은 것이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에서 나왔는데 이스라엘은 생명을 구원받기는 했지만 자유를 얻은 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의 마음이 바뀌어 이스라엘을 추격해서 모두 죽이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애굽을 나오기는 했지만 온전한 자유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십니다. 홍해를 갈라서 마른 땅 되게 하시고 그 마른 땅을 건너게 하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유를 얻게 하신것입니다. 이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는 생명을 구원받았고, 홍이라고 하는 물의 사건을 통해서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 출애굽 에피소드에 나오는 중요한 두 개의 이야기입니다. 그 중요한 두 개의 이야기가 무엇으로 상징되냐 하면 피와 물이라는 것으로 상징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출애굽 에피소드와 연결하고 싶은 요한의 의도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와 물을 통해서 우리가 그 피를 통해서 생명을 구원받고 그분의 흘리신 물을 통해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과 자유가 구주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려고 하는 의도라고 그랬습니다. 그 피와 물이 어디에서 나왔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는 그 피와 물이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창세기의 언약과 연결하려고 하는 중요한 상징이란 말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흙의 티끌로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돕는 배필을 지으시겠다라고 말씀하시고 하나의 생명을 또 창조하시는데 그 하와라고 하는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와가 생명이라는 뜻으로 영어식으로 읽으면 이브가 됩니다. 그냥 여자를 만든 게 아니라 생명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갈빗대 즉, 첼라는 아담의 허리 한쪽 즉, 옆구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허리 즉 아담의 옆구리로부터 생명이 나왔다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나온 생명이 족보를 이어 가지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가며 그 백성이 다윗의 언약으로 이어지고 다윗의 언약이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이어지고 그리스도의 언약이 교회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을 완전히 죽은 자처럼 되게 하신 후에 하나님이 그의 옆구리에서 뼈를 하나 취하셨다라는 겁니다. 아담의 허리에서 생명이 나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처음 생명은 아담의 허리 즉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언약의 공동체 이 이스라엘 지파를 형성해서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언약의 백성은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념하면서 예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기독교 신앙은 어디서부터 출발했냐면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성금요일 그 죽음에서부터 시작해서 부활로 이어지는 건데 이 관점을 잘 우리가 잘 생각해 봐야 된단 말입니다. 허리라고 하는 말이 히브리 말로 예레크입니다. 예레크라고 하는 말이 야라드에서 나온 말인데 야라드는 아래 라는 뜻이니 이 허리는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밧닷아람에서 20년 동안 노예처럼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만나 씨름하면서 야곱이 진짜 하나님 의지하는 자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기 일생 동안 의지했던 예레크를 부러뜨립니다. 이거를 창세기에서는 우리 말로 뭐라고 번역했냐면 허벅지 관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서는 허리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백성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그 예레크에서 나왔다라는 것입니다. 즉 야곱의 큰 고통을 얻게 되었는데, 야곱이 그 큰 고통을 얻고 난 다음에 그의 후손 즉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을 얻은 것입니다. 


(요19:34)절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고난 당하고 죽으신 예수님의 허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피와 물이 생명과 자유를 상징합니다. 그 생명과 자유를 받아 누리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여러분이 예수님의 피와 물을 통해서 생명과 자유를 얻고 누리게 된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님처럼 낮아져서 주님 당하신 고난을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즉 이 세상에 가서 너의 피흘림과 죽음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보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 중에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영문 밖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영문 밖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로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허리에서 나온 생명과 자유를 얻은 성도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인 것입니다. 그 고난을 통과할 때 가난이 이루어지고 영광의 면류관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살려면 자기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받아서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보냄 받은 자로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 보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죽음으로 보내서 죽음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게 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의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는데, 성령 받아 성령 충만하게 된 자로서 마땅히 그런 삶을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문 밖 고난의 길로 나가서 복음 전하고 주님을 기뻐하게 하시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그런 성도가 될 때 우리가 부흥의 증거가 되는 교회가 되고 하나님 나라 이루어가는 선교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살아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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