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 7:6-13)
- 신애교회
- 3월 26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4월 3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제 아이성 전투의 패배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가나안의 중부 지역부터 시작이 됩니다.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엄청난 승리를 거뒀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져 내리면서 이스라엘 군대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성 전투로 이어지는데 아이성 전투는 이스라엘이 패배하게 됩니다. 실패한 이유가 사람의 범죄 때문이라고 평면적으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 11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명령한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것을 도둑질하며 속이고 여기서 이제 온전히 바친 물건이라고 하는 말이 히브리어로 헤렘입니다. 헤렘은 진멸 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제 헤렘 율법을 선포하는데 가나안 정복 전쟁은 헤렘 전쟁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의 죄악이 가득했기 때문에 죄로 물든 세상이기 때문에 죄를 없애려면 모두 진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헤렘전쟁 즉, 가나안 전쟁은 두 가지 목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세상을 집멸하라고 사셨으니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 죄를 죄에 물든 가나안을 집멸하는데 있어서 하나님께 쓰임받는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나안이라고 하는 이 땅을 하나님께 온전히 받쳐드리는 전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렘 전쟁은 진멸의 전쟁이며 또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께 온전히 받쳐드리는 전쟁인 것입니다. 전쟁에 승리하고 난 다음에 전리품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되기에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는데 그 하나님께 바쳐진 것 중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도둑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다음 전투인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신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죄가 이스라엘 전체의 죄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는 겁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든 것을 범한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라는 게 이렇게 무섭고 한 가지 죄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죄인 한사람이 공동체 전체를 하나님이 미워하는 공동체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잘 따라가면 실패의 본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6절에서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티끌은 히브리어로는 ‘아파르.인데 이 ’아파르‘는 인간을 창조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이고 먼지, 티끌입니다. 사람은 본래 먼지 같은 존재입니다. 흙보다도 훨씬 더 못한 먼지 같은 존재를 하나님이 창조의 섭리를 일으키셔서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내 머리에 그런 티끌 ’아파르‘를 뒤집어 썼다는 것은 자신이 ’아파르‘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되어서 백성들을 전쟁터에 이끌고 나가서 싸웠는데 그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와는 하나님의 명성을 추락했으니 어떻게 살릴 수 있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10절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와에게 일어나라 왜 엎드렸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수와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구절을 요약하면 회개입니다. 12절에서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다‘ 로 표현하고 있는데 ’맞서지 못했다‘의 히브리원어는 라쿰 리프네입니다. 이 말을 확장하면 누구앞에서 똑바로 서 있는다는 것은 당당하게 서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사람들과 똑같이 죄인의 모습으로 서 있으니까 당당하게 서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범죄한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되는 것은 회개입니다. 13절 말씀에서“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하나님이 지금 거룩을 명령하셨다는 겁니다. 그 거룩을 위해서 죄를 진멸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진영 안에서 아간이라는 범죄자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아간을 돌로 쳐서 죽이고 훔친 물건을 불에 태워 없애버립니다.
사람의 관심은 승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중요한 건 이기느냐 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상태에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자도 마친가지로 승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할 때 하나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든지 지든지, 부자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아프든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의 승리를 위해 거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이라고 하는 하루의 부분을 위해서 거룩하라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하는 삶 전체를 위해서 내일을 살아가는 인생 전체를 위해서 거룩하게 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해답이 여호수아서 5장 15절에 나옵니다. 여호수아서 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내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내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것은 노예 즉,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한 것 “내가 하나님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지를 포기하고 나의 주인 되시는 분의 의지를 따라가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확장해서 말하면 내가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보여준 모습은 의지하던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언약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들의 부분을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이런 일 저런 일의 전부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거룩이 전제가 되면 하나님은 모두를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거룩이면 내일을 다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거룩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 즉,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상태가 되면 거룩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정확한 지도를 보여줬는데 거룩에 이르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에 이르는 것. 즉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기 위한 방법은 하나님 말씀과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과 달리 예수님이 행하는 일들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의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도로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기도라는 단어가 헬라 말로 프로슈케입니다. 프로슈케, 우리가 기도를 크게 구하는 기도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구분하는데 초신자들은 구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지만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숙한 믿음이 생기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과 같으면 겨자씨 같은 믿음이 태산같이 커집니다. 우리 믿음이 태산처럼 커지면 태산같이 커 보이던 문제가 겨자씨같이 작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넘어가게 하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이 믿음을 갖고 거룩한 주님의 마음과 같아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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