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 12:1-12)

  • 작성자 사진: 신애교회
    신애교회
  • 5월 22일
  • 5분 분량

5월 셋째 주  청년 주일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청년들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시고 무한 경쟁 시대에 승리의 기쁨도 주옵소서!
5월 셋째 주 청년 주일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청년들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주시고 무한 경쟁 시대에 승리의 기쁨도 주옵소서!

오늘 말씀은 이제 헤롯왕이 초대 교회를 이제 핍박하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제 헤롯 왕은 예수님 태어나실 때 그 헤롯 왕의 손자입니다. 교회가 이제 부흥되고 있을 때 막 부흥하고 있을 때가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그때 헤롯이 교회를 핍박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라는 겁니다.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면 자기의 정치적인 입지가 단단해지기 때문입니다. 다 잘 다스리고 있는 것으로 인정받아서 자신의 입지를 확장시키려고 했던 그런 욕망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자기 생각, 경험적인 생각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배후에서 마귀가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교회가 부흥되는 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부흥되면 이 세상에 죽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올해 교회 표어는 부흥의 증거가 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흥의 증거가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올 한 해 동안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반드시 마귀의 훼방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려고 하면 마귀는 우리를 훼방 놓습니다.

     

 이런 시련과 환란과 고난이 일어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첫째로 교회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라는 말은 프로슈케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에 나를 맞추겠습니다. 여기서 교회가 기도했다라는 것은 교회가 자기들의 뜻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구했다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베드로 사도가 내일이면 처령되니 그 생명을 구원해 달라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가 초월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초대교회 신자들이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 사람들의 기도는 요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기도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렇게 기도가 나가는 것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 신자들의 기도는 보통사람의 보편적인 기도를 초월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비로소 하나님께 다 맡기게 됩니다. 하나님께 다 맡겼다고 해도 부분적인 것을 내가 붙잡고 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닥까지 인생이 추락 했다고 생각할 때 체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삶과 마음과 영으로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이 베드로의 순교가 당연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다 그를 받아 들이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베드로가 구원받기를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감옥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한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순교 당하게 될 때 배교하지 않는 그런 순교자가 되게 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기도했던 것과 다르게 그 죽음을 삶으로 되돌리는 구원의 은혜를 보이셨습니다. 뜻밖의 은혜를 허락해 주신 것이 사람들이 깜짝 놀란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되는 주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뜻밖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전혀 뜻하지 않았던 그런 은혜, 내가 생각했던 차원 이상의 그런 차원의 은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뜻밖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때가 바로 성도가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내 생각은 하늘을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이 너희의 길보다 높고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차원의 높이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이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높다 그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으로 생각하고 훨씬 더 높은 차원으로 계획하시는 분인 것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윌리엄 제임스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김선도 감독님도 평소에 윌리엄 제임스 말씀을 자주 인용하셨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생각을 바꾸니까 행동이 바뀝니다. 행동을 바꾸니까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니까 운명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생각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인생 전체가 달라지더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기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행 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남에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베드로를 깨우면서 주의 사자가 베드로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말하고, 또 옆구리까지 쳐서 아주 거칠게 깨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같이 일어나 가면 되는데 급히 가는 것은 영적인 측면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야 되는데 너의 생각, 너의 마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죽어 순교당할 것을 생각하면서 지금 잠자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너에게 시간을 조금 더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 위대한 사도였던 베드로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다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겁니다. 여전히 자기 생각, 경험적인 생각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육체가 잠들어 있었으면서 동시에 그 영혼도 잠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천사가 그를 깨웁니다. 어라이즈 일어나 서라. 단순히 일어나라는 게 아니라 일어나 서라는 것입니다. 부활이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인데 이는 죽었던 자가 잠에서 일어나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잠들었다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육체가 아니라 그 영혼이 다시 일어나서 어라이즈 일어나라 했을 때 그가 깨어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가 언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는가 하는 지점입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기도할 때 베드로는 잠들어 있었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부분이 놀라운 것은 여러분이 지금 혹시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영혼이 잠들어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럴 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내 영혼이 깨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반석처럼 세워지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지 못할 때 교회에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도움을 구하지 말고 성도들에게도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더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성도들이 기도했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고 성도들이 기도했다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기도한 건 분명하지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묶어가지고 교회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이것이 공동체 하나 됨입니다. 교회 즉, 에클레시아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렇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왜 어떤 교회들은 힘이 있고 어떤 교회들은 힘을 잃어가고 있을까요? 서로 교제하는 것이 이전 같지가 않습니다. 성도들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이전처럼 삶의 고민과 문제들을 가지고 나와서 교제하고 마음과 마음을 통하는 사랑의 관계를 가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 강력하고 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안에 하나 됨이 다 이루어져야 합니다. 형식적인 하나 됨이 아니라 정말 가족과 같은 하나 됨,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다시 화합할 수 있는 그런 가족 같은 몸된 지체로서의 하나 되는 성도들끼리 자주 모이고 서로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런 교회, 서로 먼저 마음을 열고 자기의 고민을 나누고 이야기하고 삶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려면 우리가 일단 모이기를 잘해야 됩니다. 속회로, 선교회로 함께 모여 말씀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함께 기도해 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인 공동체로 만들어가고 더 관심을 가져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내가 다가갈 줄 아는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저 사람에게로 가까이 다가 가려고 노력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세상의 어떤 매서운 바람과 공격도 서로를 지켜주면서 승리하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될 줄로 믿습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