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1-17)
- 신애교회
- 4월 17일
- 4분 분량

오늘 말씀은 이렇게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의 절대 한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인생에서 도무지 피해지지 않고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하나의 현실이 있습니다. 내 육신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좋은 집을 혹은 좋은 차를 혹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좋은 직장도, 명예도, 좋은 권력도, 좋은 부귀 영화도 다 내가 육신이 죽게 되면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나인성 과부의 가정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들이 죽어 사람들이 관을 메고 무덤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그 아들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울고있고 사람들은 관을 메고 장례 행렬을 따라갈 뿐입니다. 이 세상이 죽음은 현실입니다라는 이야기합니다. 성경도 죽음이 현실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모두 죽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지 그것이 내 앞에 바로 놓여져 있는 현실입니다라고 하는 것을 직접 아주 깊이 있게 깨닫고 고민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이야기가 현실이라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9번의 재앙이 애굽 땅에 흘러 나가는데, 그 9번의 재앙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나의 부와 권력, 나의 힘과 군사력으로 하나님마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앞에 죽음이 놓여져 있는데 그 죽음이라고 하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현실은 영원한 부귀와 권력과 영화로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던 겁니다. 얼마 뒤에 곧 애굽의 죽음이 임합니다.
인생에서 정말로 불변하는 현실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면 나라는 존재는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만약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면 내 생명을 붙잡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을 붙잡게 되면 그거를 받아들이게 되면 나의 생명을 붙잡지 못하고 절대자의 생명을 붙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피를 영생하는 피로 바꿔서 죽음을 넘어가게 하는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바꿔야 되겠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야곱이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것은 자기 죽음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얍복 강가에 서서 내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나를 붙잡으면 죽음이지만 하나님을 붙잡으면 영원한 생명의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음이라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때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 나의 힘으로 죽음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죽음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내 육체로는 죽음을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은혜인 것을 여러분 반드시 인정하고 고백하고 신앙하는 성도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과 연합하기로 작정해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혈기,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이 주장되어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복된 삶인 것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되어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가버나움에서 나인성까지 거리가 한 40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한 이틀쯤 걸어서 나인성까지 도착했고 과부의 아들을 살렸다는 것입니다. 그 40km 길을 걸어가지고 예수님이 나인성에 오신 이유가 사람을 살리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나인성 과부뿐 아니라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 찾는 게 아니라 얼마나 좋으신 분이냐면 내가 찾기 전에 예수님이 먼저 나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라고 표현한것은 하나님이 함께 붙어 계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그 백성을 돌보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엄청난 은혜인 것입니다. 완전히 무기력과 무능의 상태에 빠진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나인성 과부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적인 은혜의 하나님 1%의 믿음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주님이 그냥 무지막지하게 은혜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 의로움도 없고 자기의 열심도 없고 자기의 공로도 없습니다. 이 여자는 믿음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는 인간의 공로가 전혀 없습니다. 어떤 인간의 공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슬픔만 있고 괴로움만 있고 고통만 있을때에 주님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찾아오셔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경우에는 더하지 않습니까? 이 아들의 경우에는 완전 죽은 자입니다. 어머니는 울기라도 하는데 이 아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 무기력 무능의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바로 이 무기력의 상태 무능의 상태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아들에게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기력과 무능의 상태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떠나보내야 되는 그런 상태에서 눈물밖에 흘릴 게 없는데 주님이 그녀에게 나타나셔서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나의 무기력을 인정할 때 놀라운 것은 나의 무기력을 인정할 때 나의 무능력을 인정할 때 나의 힘 없음을 인정할 때 어머니가 우는 자로서 존재하고 아들이 죽은 자로서 존재할 때 주님의 말씀이 임하셔가지고 그 말씀으로 살아나게 한단 말입니다. 에스겔서에 있는 말씀처럼 마른 뼈가 있는 골짜기 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에스겔이 대연했을 때 생기야 일어나 생기야 불어 생기야 불어서 저들에게로 들어가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진 곳으로 성령이 들어가 가지고 마른 뼈가 살아나 군대가 된 것처럼 우리가 죽은 자로서 존재할 때에도 우는 자로서 존재할 때에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은혜 주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으로서는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서는 죽음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서는 절망과 한계를 넘어설 수가 있습니다. 이 믿음의 진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믿음의 진실한 성도가 되라는 것은 이것을 반드시 믿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인간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그 세상이 주는 것이 여러분에게 결코 만족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의 신비는 결국 내가 그렇게 연약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도전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우는 자로 있어야 한다는 것 즉, 나인성 과부처럼 우는 자로서 나를 주장하는 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이 청년처럼 자기를 주장하는 자가 아니라 죽은 자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로서 우는 자로서 존재할 때에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침범해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나의 힘과 권세와 지혜와 능력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하고 관계된 모든 일에 대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라도 그저 주여 이후로 통곡만 나오고 탄식만 나오는 상태가 되었을지라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방문하셔서 그 열심으로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살아계신 하나님,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이신 줄을 믿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성도로서의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죽은 자도 청년아 내가 내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라고 했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어라이즈 하시는 말씀을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의 말씀을 딱 붙잡고 믿음으로 살아보십시오. 그 말씀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길에 진짜 생명의 길이 있고 은혜의 반석이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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